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를 중심으로-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 연구소장
왕검(험)성은 위만조선의 마지막 수도이고, 1 낙랑군 조선현은 낙랑군을 다스리던 치소였다. 그런데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처럼 서로 혼동하기 쉬운 것도 드물다. 왕검성과 조선현의 위치를 각각 따로 보는 견해도 있고,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는 점이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왕검성의 위치와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는 같은 것으 로 여겼던 것은 위만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 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학계의 일부에서는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대동강 북쪽의 평양일대 에, 낙랑군 조선현은 대동강 남쪽의 토성리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분리하고 있다. 왜 대동 강 북쪽의 왕검성 자리에 낙랑군의 치소인 조선현을 설치하지 않고, 강 하나 남쪽에 설치했 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리된 인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소속의 일본인 학자들이 분리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 사기 』 「 조선열전 」 등에 ‘위만이 패수를 건너 왕험성에 도읍했다’고 서술되었는데, 일본 인 학자들이 이때의 패수를 지금의 대동강으로 보고 대동강 남쪽에 조선현이 있었다고 한 것을 추종한 결과이다. 이나바 이와기치 등의 식민사학자들은 패수가 대동강이란 전제에서 대동강 남쪽에 조선현을 갖다 둔 것인데, 해방 후 한국인 학자들은 패수를 청천강, 또는 압 록강으로 보면서도 여전히 낙랑군 조선현만은 대동강 남쪽으로 비정하는 이해할 수 없는 학 문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학자들은 패수를 압록강, 또는 청천강으로 보면서 대동강 북쪽의 평양에 왕검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낙랑군 조선현만은 대동강 남쪽으로 비정하는 이상한 논리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은 이런 한국 학계 일부의 논리적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고 실제 왕검성과 조선현의 위치를 중국 사료를 통해서 찾으려는 목적 으로 서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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